2000년 개봉한 플란다스의 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천만 감독이자 아카데미 수상 감독 봉준호의 데뷔작이다.
이름
지금 다시 봐도 독특한 제목의 독특한 영화다. 제목에서 떠오른 동화완 전혀 다르게 이성재나 배두나가 우유를 팔진 않는다. 연쇄 '개'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범인을 쫓는다. 현남은 꿈꾸는 소녀같은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고,
그건 상식을 운운하지만 너무나 몰상식한 윤주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부터 이름부터. 어딘가 뒤틀려 있는 듯한 이 영화엔 오랜 시간을 두고봐도 매력적인 점이 많다.
추격
액션 영화의 꼽을만한 추격신은 많지만 플란다스의 개만한 추격신이 있을까 싶다. 플란다스의 개를 다시 떠올릴 때도 아파트와 계단을 달리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점차 가까워지는 샷 사이즈는 긴장감을 살려주고 빨간색과 그 색을 따라가는 노란색이 바싹 붙어 있는 느낌을 더해준다. 간간히 손떨림 보정능력은 개나 준 것같은 캠코더로 찍은 듯한 장면은
급작스럽게 이질감을 던지며 관객이 직접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터지는 아드레날린!
추격신을 생각하면 연관지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현남이 강아지 순자를 구하려는 장면이다. 노란 후드를 동여메고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뛰는 현남! 아파트 옥상마다 노란 후드를 입은 사람들이 꽃가루를 날린다. 맨손으로 강도를 때려잡은 은행 여직원을 내심 동경하던 현남에게 순자를 구하는 순간은 고조된 긴장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관객에게 전달하는 표현은 색달랐다. 수많은 현남이 현남을 응원하고 긴장과 공포를 억누르는 아드레날린이 꽃가루로 터지는 것만 같았다. 뛰어라, 현남아!
아슬아슬한 순자의 뒷모습
긴장감하면 나에게 최고였던 장면이 바로 최모씨가 순자의 뒤를 노릴 때였다. 보기만해도 심장떨리는 철근으로 순진무구한 순자의 뒤를 조준할 때 “악!”소리가 바로 나왔다. 절묘하게 현남이 끈을 풀고 다시 달리긴 하지만 그 전까지의 침마르는 순자와 철근의 대립은 오싹하기만 하다.
파!
강아지를 탕으로 조리하는 과정에서 언저리에 계속 파를 방치했다. 파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것이 전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역시 파를 방치했다. 그리고 순자가 사라진다. 모두가 경비원을 의심할 때 파를 들고 나타나면, 경악이 이어진다. 드러내면서 티내지 않는 반복은 코미디를 만들기도 하고 뒤통수를 치는 반전과 공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파는 그런 의미에서 엄청나다. 경비원을 의심했다가 긴장이 풀리는 파는 살인의 추억에서 빨간 옷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엄청난 파다.
빛과 윤주와 현남
복사기의 빛과 점차 타이트해지는 샷 사이즈. 윤주와 현남. 관계 속에 품고 있는 감정이 드러났다면,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들의 현재 모습이 드러났다. 빛이 들어오는 전창 앞에 서 있던 윤주는 스스로 커튼을 치라 시키고 어둠 속으로 자신을 묻는다. 그 얼굴조차 어둡다. 케잌상자에서 알량한 만원 짜리 한장을 내밀고 감사에 겨운 인사를 받던 윤주의 현재는 생각만큼 즐겁고 현란하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발을 디디며 관리사무소에서 짤리기 까지한 현남은 산 속에서도 밝은 빛을 받으며 개운하게 걷는다. 그리고 거울을 비춘다. 그 빛이 나의 현재를 묻는다.